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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이야기

비율론의 선구자, 고대 그리스 수학자 에우독소스(BC 408~BC 355)

by buchoe81 2025. 9. 23.

  에우독소스는 고대 그리스 소아시아의 크니두스(Cnidus)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히파르코스, 프톨레마이오스 등과 같은 거대한 고대 사상가들 사이에 자리 잡은, 매우 중요한 전환기의 학자였습니다. 그의 활동 시기는 플라톤과 거의 동시대였고, 실제로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Academy)에서 공부한 적도 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의학, 철학, 수학, 천문학 등 다양한 학문에 정통했던 다재다능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 사회는 수학과 천문학, 그리고 철학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학문 체계 안에서 융합적으로 다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에우독소스의 연구는 단순한 수학적 탐구를 넘어 우주의 질서, 자연 현상, 철학적 진리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1. 기하학과 비율론

  에우독소스가 가장 크게 기여한 분야는 비율론(Theory of Proportion) 입니다. 이는 특히 무리수(irrational numbers)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적인 시도로, 그의 업적은 이후 유클리드의 『원론(Elements)』 제5권에 체계적으로 정리되었습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모든 수를 정수의 비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2 같은 무리수가 등장하면서 그 체계는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에우독소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양이 서로 어떤 배수 관계에 있는지를 비교하는 새로운 방식의 정의를 제시했습니다.
  그의 비율론은 단순히 정수의 비율이 아니라, 연속적인 크기를 가진 양들 간의 관계를 일반화한 개념이었고, 이는 사실상 실수(real number) 개념의 전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에우독소스는 현대 수학의 핵심 체계가 되는 실수론의 초석을 놓은 셈입니다.


2. 소진법(Exhaustion Method)과 적분의 전조

  에우독소스는 소진법(method of exhaustion)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는 주어진 도형의 넓이나 부피를 구하기 위해, 그 도형을 무한히 많은 작은 도형으로 채워가면서 극한에 다가가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원의 넓이를 구할 때, 정다각형을 원 안에 계속 넣어 면적을 점점 근접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오늘날의 적분법(integration)의 원형이 바로 이 소진법입니다.
  아르키메데스가 후대에 소진법을 사용하여 구와 원주율, 포물선의 면적 등을 계산했는데, 이 방법론의 기반을 마련한 사람이 바로 에우독소스입니다. 따라서 그는 사실상 적분학의 선구자로 평가됩니다.


3. 천문학적 업적

  에우독소스는 수학자일 뿐 아니라 천문학자로도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는 당시 하늘의 별과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하려고 동심구설(同心球說, Homocentric spheres theory)을 제안했습니다.
  그의 모델에 따르면, 우주는 여러 개의 구가 같은 중심(지구)을 기준으로 겹겹이 배치되어 있으며, 각 구가 서로 다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별과 행성의 운동을 만들어낸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별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구, 태양과 달의 운동을 위해 각각 3개의 구, 행성의 복잡한 역행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4개의 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그는 27개의 동심 구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비록 그의 이론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태양 중심적 체계와는 다르지만, 그가 시도한 것은 행성의 운동을 기하학적 모델로 체계화하려는 최초의 노력이었고, 이는 후대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4. 철학적 성향과 플라톤과의 관계

  에우독소스는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에서 공부했지만, 그의 사상은 플라톤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습니다. 플라톤은 수학적 조화를 통해 우주를 설명하려 했고, 형이상학적 관점을 중시했습니다. 반면 에우독소스는 경험과 관찰에 기반한 과학적 설명을 더욱 중시했습니다.
  특히 천문학에서 플라톤은 “천체의 불규칙한 운동을 원운동으로 설명하라”는 문제를 던졌는데, 에우독소스는 이에 응답하는 형태로 동심구 모델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플라톤의 요구와 과학적 계산을 접목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5. 윤리학과 다른 학문적 관심

  흥미롭게도, 에우독소스는 수학과 천문학뿐만 아니라 윤리학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쾌락을 인간 행위의 중요한 동기로 간주했으며, 이는 후대 에피쿠로스 철학의 쾌락주의와 유사한 면모를 보입니다.
  그의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언급할 정도로 당시에도 주목받았으며, 수학적 엄밀성과 함께 인간의 삶의 목적에 대한 탐구까지 포괄한 학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6. 후대에 끼친 영향

  에우독소스의 비율론은 유클리드의 『원론』에 그대로 계승되었고, 소진법은 아르키메데스에게 이어졌습니다. 그의 천문학적 모델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뿌리가 되었으며, 그의 철학적 논의는 윤리학 전통에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따라서 에우독소스는 “수학자”로만 한정하기에는 너무 다면적인 학자였고, “학문적 체계의 연결자”로 평가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7. 현대적 평가

  오늘날 수학사 연구자들은 에우독소스를 현대 해석학과 적분학의 선구자로 평가합니다. 또한 그의 비율론은 실수 체계의 기초를 닦은 기념비적인 성과로 여겨집니다. 천문학적으로는 비록 잘못된 우주관이었지만, 기하학적 모델을 통해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 한 최초의 과학적 시도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즉, 에우독소스는 수학과 과학을 단순한 철학적 사변이 아니라, 엄밀한 논리와 관찰에 기초한 학문으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8. 맺음말

  에우독소스는 이름만큼이나 시대 속에서 다소 잊혀진 인물이지만, 그의 업적을 따라가다 보면 고대 수학과 천문학이 어떻게 체계화되고 발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무리수 문제 해결, 소진법 창안, 동심구 우주론 제시, 윤리학적 논의 등 그의 공헌은 다양하고도 심오했습니다.
  그의 사유와 연구는 아리스토텔레스, 아르키메데스, 프톨레마이오스, 그리고 현대 수학의 거대한 흐름 속에 스며들어 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학문적 영감을 주는 고대의 위대한 사상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