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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이야기

근대 수학의 토대를 세운 거인, 스위스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1707~1783)

by buchoe81 2025. 9. 26.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1707년 스위스 바젤 근처의 작은 마을 리헨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개혁교회의 목사였고, 원래는 아들이 신학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오일러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수학과 계산에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숫자를 다루는 능력이 또래보다 훨씬 뛰어났고, 추상적인 개념을 빠르게 이해했다.

  오일러는 15세의 나이에 바젤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이는 당시로서도 매우 이른 나이였다. 그는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수학자 요한 베르누이의 지도를 받았다. 베르누이는 오일러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신학보다 수학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아버지도 아들의 선택을 존중했고, 오일러는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1. 러시아에서의 첫 도약

  1727년, 오일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의 초청을 받아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학과 생리학을 맡았지만, 곧 수학과 물리학에 본격적으로 집중할 수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는 폭발적인 연구 성과를 내며 이름을 알렸다. 이 시기 그는 해군 문제, 선박 건조, 해양학 등 응용 분야에도 기여하며 단순한 이론가가 아닌 실제 문제 해결자로서도 활약했다.

  1733년, 그는 아카데미의 수학 부문 책임자가 되었고 같은 해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이후 그의 명성은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다.

2. 베를린 시기의 전성기

  1741년, 오일러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초청을 받아 베를린 아카데미로 옮겼다. 그는 이곳에서 25년 동안 연구를 이어갔는데, 이 시기가 그의 학문적 성취가 가장 빛난 시기였다.

  그는 수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연구했으며, 수백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저작 중 하나인 『무한해석론』은 근대 해석학을 정립한 기념비적 저서로, 함수와 무한급수 개념을 체계적으로 다뤘다. 오일러는 수학적 개념을 단순히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교육 가능한 체계로 정리해 후대 수학 교과서의 기초를 마련했다.

3. 다시 러시아로의 귀환

  1766년, 오일러는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이 시기 그는 시력이 급격히 악화되어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놀라운 기억력과 머릿속 계산 능력 덕분에 여전히 방대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는 제자와 아들에게 문제를 구술로 설명하고 기록하게 했으며, 그 결과 여전히 수많은 논문이 세상에 나왔다. 오일러는 시력을 잃고도 학문적 생산성을 잃지 않은 드문 사례로 꼽힌다.

  그는 1783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수학 문제를 고민하다가 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4. 주요 업적

(1) 함수 개념의 확립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함수 개념을 오일러가 정리했다. 이전에도 함수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오일러는 이를 체계적으로 정의하고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도록 기호 체계를 마련했다. 덕분에 수학은 한층 명확하고 간결한 언어를 가지게 되었다.

(2) 해석학 발전

  오일러는 해석학, 즉 연속적인 변화와 무한한 과정을 다루는 수학 분야의 기초를 세웠다. 그는 지수, 로그, 삼각함수 등을 체계화하고, 복잡한 계산을 단순한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는 이후 미적분학과 복소수 이론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3) 수론의 업적

  오일러는 수론, 특히 소수와 정수의 성질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소수에 대한 성질을 탐구하며, 수많은 정리와 공식들을 만들어냈다. 또한 완전수, 친화수와 같은 고전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연구는 훗날 리만 가설과 같은 현대 수론의 큰 문제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다.

(4) 기하학과 위상수학의 기초

  오일러는 다면체 연구를 통해 새로운 수학적 관계를 발견했다. 다면체의 꼭짓점, 변, 면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이는 후에 위상수학이라는 새로운 수학 분야의 기초가 되었다. 오늘날 위상수학은 데이터 과학, 네트워크 분석 등 현대적 응용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5) 그래프 이론의 출발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문제로 유명한 오일러의 연구는 그래프 이론의 시작이었다. 그는 단순히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일반화해 새로운 수학적 사고의 문을 열었다. 오늘날 그래프 이론은 컴퓨터 과학, 통신망, 물류, 사회 네트워크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 도구로 쓰이고 있다.

(6) 물리학과 공학에서의 기여

오일러는 순수 수학을 넘어 응용 과학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유체의 흐름을 설명하는 기본 방정식을 제시했고, 탄성체 이론, 광학, 천체역학에서도 중요한 연구를 발표했다. 그의 연구는 단지 이론적 흥미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선박 설계, 항공학, 기상학에까지 적용되었다.


5. 저술과 학문적 영향

  오일러는 평생 850편이 넘는 논문과 30권 이상의 저서를 남겼다. 그의 저술은 단순히 학문적 발견을 나열하는 수준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교육적으로 서술되었다.

  특히 그의 저서는 후대 수학 교과서의 모델이 되었고, 학문을 널리 퍼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유럽 학계에서 발표된 논문 중 절반가량이 오일러의 것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연구량은 압도적이었다.


6. 인간적인 면모

  오일러는 학문적 천재였지만 동시에 겸손하고 성실한 인물이었다. 시력을 잃은 뒤에도 좌절하지 않고 연구를 이어갔으며, 놀라운 기억력과 사고 능력으로 제자들을 이끌었다. 그는 신앙심이 깊었고, 가족을 소중히 여겼다. 자녀도 많았으며, 가정적이고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방대한 연구 성과를 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따뜻하고 정직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었고, 동료 학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7. 오일러의 유산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수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의 이름을 딴 공식, 함수, 방정식, 정리는 수없이 많다. 수학 교과서 어디를 펼쳐도 그의 이름이 등장할 정도로, 그는 거의 모든 분야에 기여했다.

  오일러는 단순히 연구 성과를 남긴 수학자가 아니라, 수학을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언어로 정리한 “수학의 교사”였다. 그의 연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으며, 과학과 공학의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결론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18세기라는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치는 수학의 거인이었다. 그는 해석학, 수론, 기하학, 그래프 이론, 물리학, 공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또한 탁월한 저술가이자 교육자였으며, 겸손하고 신실한 인격으로 후대에 귀감이 되었다.

  만약 수학이라는 거대한 건물이 있다면, 그 기둥과 토대 대부분은 오일러가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이름은 앞으로도 수학과 과학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